얼마 전에 PSP 3000번대를 하나 장만했다. PSP가 단종된 지도 이제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에 당연히 새 제품을 구매한 것은 아니고, 새 것 같은 리퍼비시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닌텐도 스위치와 스팀 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2023년에, 내가 굳이 '고전'의 반열에 들어간 지 오래된 PSP를 찾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바로 〈디제이맥스 포터블〉 시리즈를 실기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말그대로 '디맥 구동기'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이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이 글에서 다룰 소재는 디제이맥스가 아니다.
한창 PSP가 현역 콘솔로써 상승가도를 달리던 옛날 옛적에, 인터넷에서 PSP와 관련된 흥미로운 물건을 하나 마주쳤던 적이 있는데 바로 'PSP용 DMB 모듈'이었다.
PSP의 3.8인치 디스플레이는 (지금이야 매우 작게 느껴지지만) 현역 시절에는 미디어 감상용으로 나쁘지 않은 축에 속하는 크기였기 때문에, 당시 내 주변에서도 PMP 대용으로 이것을 쓰는 친구들이 꽤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PSP의 이러한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딱 수요를 적절하게 겨냥하고 나온 제품.
하지만 당시 PSP가 아닌 닌텐도(NDS) 진영에 서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그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부러웠던 것이, 당시의 나에게는 '휴대폰이 아닌' 기기로 DMB를 시청한다는 것에 대한 이상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DMB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PSP에 환상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제 나도 'PSP 오너'가 되었고, 이러한 로망을 이룰 기회가 뒤늦게나마 열린 것이다.
그런데 DMB가 아직도 나오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나온다. (2023년 7월 기준) DMB 서비스가 최초로 개시된 2005년 즈음부터 줄곧 240p 화질로 송출되어 왔던 '근본' 전파도 아직 살아있고, 2016년경부터 최신 규격의 코덱으로 새롭게 송출되기 시작한 HD DMB 전파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DMB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은 상황인데, 이것의 주된 이유는 DMB의 주 시청 경로였던 휴대폰에서 DMB 튜너를 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로 자리잡으며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 사실상 DMB 전파를 기반으로 교통정보를 받는 구형 차량용 내비게이션 정도를 제외하면 현재 일상적인 수요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처음에는 이 물건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PSP도 단종된 마당에 PSP용 DMB 모듈도 역시나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PSP는 레트로 게임 매니아들 사이에서 아직도 수요가 있기라도 하지, DMB 모듈 같은 물건은 대체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살까?
그러나 인터넷 쇼핑몰에 'PSP DMB'라는 키워드를 쳤더니 무수한 판매처들이 검색되는 것을 보고 나의 이런 걱정은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심지어 버스 요금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매물도 볼 수 있었는데, 물건 자체의 인지도와 별개로 수요는 별로 없었던 모양인지 악성 재고가 쌓인 게 참 많았나 보다...
언박싱
그렇게 해서 순조롭게 입수한 'PSP용 DMB 튜너' 새 제품의 패키지. 이거 무려 소니 로고까지 붙은 '공식' 제품이다.
패키지의 상태가 꽤 양호해서 언제 생산분일까 하고 보니 무려 '2010년 5월'… 13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생산분이다.
구성품으로는 DMB 모듈 본체와 이를 수납할 수 있는 전용 케이스가 함께 있는 구성.
기본적으로 이 DMB 모듈은 PSP 상단의 USB 단자에 꽂아서 사용하는데, 이러한 작동 구조 때문에 2000번대부터의 기종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모듈의 한쪽에는 다이얼이 있는데, 이 다이얼을 통해 PSP의 USB 단자 주변에 있는 홈에 나사를 조일 수 있다.
이러면 PSP와 DMB 모듈이 더 강하게 결속되는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탈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DMB 모듈을 아주 가끔씩만 쓴다면 굳이 나사를 조이지 않는 것을 추천.
모듈에 내장되어 있는 안테나는 PSP의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앞쪽, 왼쪽, 오른쪽의 3방향에 대해서만 자유롭게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또한 3.5파이 잭으로 연결되는 규격의 외장 안테나를 따로 연결할 수도 있는데, 일반적인 이어폰을 연결할 경우 안테나로써의 기능만 수행할 뿐 오디오는 나오지 않는다.
사용을 위한 준비
사용 설명서에도 나와있듯, PSP에서 DMB 모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용 DMB 애플리케이션이 저장되어 있는 외장 메모리스틱이 꼭 필요하다.
국내 정발판 PSP의 경우 홈 화면의 [엑스트라] 카테고리에 가면 '지상파 DMB'라는 앱을 볼 수 있는데, 안그래도 이것을 처음 실행하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인터넷에서 DMB 애플리케이션을 받아 메모리스틱에 저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PSP용 인터넷 서비스가 종료된 지금은 이 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애플리케이션 파일을 따로 구해서 메모리스틱에 직접 넣어주어야 한다.
웹 아카이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과거의 아카이브된 버전의 애플리케이션 파일을 구할 수 있었다:
https://web.archive.org/web/20090131213213/http://www.playstation.co.kr/psp/dmb/download/EBOOT.PBP
이렇게 구한 'EBOOT.PBP'라는 파일은 PSP에서 한번 초기화된 메모리스틱 상의 올바른 위치에 넣어주면 된다.
사용 설명서에서는 국내 정발판 PSP에서만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이 과정에서 약간의 트릭을 쓰면 해외판 PSP에서도 쓸 수 있다.
국내판: \PSP\APP\NPHW00011에 'EBOOT.PBP' 복사
해외판: \PSP\GAME\NPHW00011에 'EBOOT.PBP' 복사
이렇게 설치한 DMB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방법도 국내 정발판과 해외판의 경우가 각각 다르다.
국내판: [엑스트라] > '지상파 DMB' 실행
해외판: [게임] > [Memory Stick™] > 'DMB Tuner' 실행
애플리케이션 기능 살펴보기
DMB 애플리케이션을 처음 실행하는 경우 채널 검색이 수행된다. 물론 PSP에 DMB 모듈이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채널 검색이 완료된 이후에 볼 수 있는 DMB 애플리케이션의 기본적인 UI는 이와 같이 생겼다. 이 상태에서 [□] 버튼을 누르면 우측의 목록 메뉴를 표시하거나 숨길 수 있다.
전체 화면 모드에서는 목록 메뉴를 굳이 띄우지 않아도 위·아래쪽 화살표 키를 누르면 빠르게 채널을 전환할 수 있다.
어디서든지 [△] 버튼을 누르면 간편 메뉴가 표시된다. 이 메뉴를 통해 이전에 시청하던 채널로 돌아가거나, 채널을 새로 검색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전체 화면 모드에서 [SELECT] 버튼을 누르면 전체 화면 상태에서 보이는 화면의 크기가 조절되는데, 옵션은 총 세 가지다.
방송 시청 중 양 트리거([L], [R])를 한꺼번에 누르면 현재 방송 화면을 jpg 이미지로 캡처할 수 있다.
또한 양 트리거([L], [R])를 길게 누르면 현재 방송 화면이 동영상으로 녹화된다. 녹화되는 파일 확장자는 '.rec' 파일.
캡처 또는 녹화된 방송의 기록은 우측 목록 메뉴의 [REC]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록된 파일들은 DRM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DMB 애플리케이션 바깥에서는 재생이 불가능하다.
후기
원래는 오로지 디제이맥스를 굴릴 용도로 샀던 PSP에서 이렇게 오랜만에 지상파 DMB를 마주하게 된 건 참 재밌는 경험이었다.
어릴 적에 DMB를 보던 때에는 참 이런 화질도 볼 만하다고 느끼면서 잘 봤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기본적으로 1080p부터 시작하는 유튜브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240p라는 DMB의 '근본' 화질은 정말 상대적으로 못 볼 것처럼 느껴지는 게 참 격세지감이 느껴지면서도 씁쓸하다.
2023년 올해로 지상파 DMB 서비스가 개시된 지 자그마치 18년이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상파 DMB'라는 서비스를 대개 피쳐폰~스마트폰 초창기 시절에 반짝 접했다가 그 이후로 OTT 서비스의 대두와 함께 잘 쓰지 않게 된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아직까지도 DMB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십중팔구 "그게 아직까지도 되는 거였어?" 하고 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실 방송덕후인 나도 DMB가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가끔씩 놀라고는 한다. 아무리 HD DMB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보급형 스마트폰마저도 DMB 대신 FM 라디오 수신에 대한 사양을 넣는 것이 당연시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언제 서비스 종료 공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상파 DMB이긴 하니 말이다.
최근에 (안테나를 직접 뽑아 DMB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연식이 꽤 되는 스마트폰 공기계들을 모조리 처분하게 되면서 한동안 DMB를 수신할 수 있는 장비가 수중에 없었던 것이 개인적으로 조금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렇게라도 DMB 수신기의 포지션을 구사할 수 있는 장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이번 지름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번에 올렸던 '휴대용 디지털 TV' 후기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 획득 수단의 중요성을 가장 크게 여기고 있기에, 그만큼 지상파 DMB의 서비스 종료는 내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인터넷에 쉽게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FM 라디오나 지상파 DMB와 같이 '인터넷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송수신되는 매체의 존재는 정보 격차의 최소화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PSP용 원세그 모듈'을 구매한 일본 소비자들의 후기를 몇몇 읽었는데, "방재용 원세그 수신기보다 성능이 좋은 것 같다"면서 쓸모가 없어 방치되고 있는 PSP를 비상시 방송 시청용으로 활용해 보려는 사람도 간간히 있는 듯했다.
이렇게 재난 대비용으로의 활용 가능성은 원세그와 비슷한 시스템인 지상파 DMB를 운용하는 한국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아무리 현재는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했을지라도 지상파 DMB의 서비스가 지속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상파 DMB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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