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크롬캐스트 4세대 4K 모델을 샀다.
3세대 모델을 사 놓고 잘 굴리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감행한 지름인데, 돈이 썩어 넘치는 사람마냥 단순히 '3세대 괜히 샀어! 4세대 쓸 거야!' 하며 충동구매를 저지른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4세대를 새로 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기에 결정한 지름이다.
3개월 전의 이야기
그 사연은 최근에 부모님이 자주 보시는 구형 TV에 내가 쓰던 3세대 모델을 달아드렸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소에 부모님이 TV 모니터를 놔두고 작은 폰 화면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장시간 보시던 모습이 꽤 걸려서 한번 크롬캐스트를 달아 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이전부터 스마트 TV 류의 제품을 다루는 것을 조금 어려워하는 타입이셨지만, 이 모델은 그냥 전원을 켜 놓은 채 폰에서 버튼 하나만 딱 누르면 영상이 나오는 등 사용 방법이 매우 직관적이라 다루기 편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시니 나도 흐뭇했다.
그래서 결국 내 모니터의 HDMI 단자 자리는 다시 텅 비게 되어 크롬캐스트 한 대가 더 필요한 상황이 됐는데, 기왕에 새로 사는 거 이번에는 한번 몇 만원을 더 투자해서 4세대를 사보자 다짐했다.
평생 3세대만 쓰면서 '아, 4세대도 좋다던데 그거 사 볼 걸 그랬나' 하는 미련을 품으며 끙끙 앓는 것보다, 이번에 4세대를 사면서 결과적으로 3세대, 4세대 둘 다 써 보고 판단해 보는 듯한 그림을 그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리모컨까지 주는 크롬캐스트
크롬캐스트 4세대, 정확히는 'Chromecast with Google TV'라고 불리는 이 제품은 현재 시판 중인 크롬캐스트 브랜드 중에서 제일 최신 기종이다. 미디어 캐스트 기능 이외에도 안드로이드 TV 기반의 '구글 TV' 시스템을 내장하고 있는 이 모델은 이쯤 되면 캐스팅 기기라기보단 하나의 셋톱박스로 봐야 할 수준으로 그 기능성이 월등히 향상된 것이 큰 강점이다. 결정적으로 기본 구성품에 리모컨까지 주니 정말 이 정도면 셋톱박스 맞다.
크롬캐스트 4세대는 성능에 따라서 HD와 4K 모델 두 가지로 나뉜다. 이 중에서 HD 모델은 2022년 9월에 공식 판매처를 통해 국내에 정식 발매되었지만, 하필 또 4K 모델은 동년 11월에 LG유플러스 독점으로 자사의 IPTV 셋톱박스로써 정식 발매되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국내에서 4K 모델을 통신사 상품과 최대한 엮이지 않고 구매하기 위해서는 해외 직구밖에 대안이 없다.
언박싱
크롬캐스트 3세대와의 박스 크기 비교. 가로 길이과 높이는 동일하지만 세로 길이가 3세대 박스에 비해 조금 더 길다.
그 밑에는 전원 어댑터와 USB-A to C 형식의 전원 케이블이 가지런히 깔려 있다.
크롬캐스트 4세대는 3세대와 비교해 하드웨어 사양뿐만 아니라 요구 전력량까지 높아졌다.
정확히는 5V 1A에서 5V 1.5A로 상향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 기기들처럼 대개 5W급의 전원을 제공하는 TV의 USB 단자에 전원 케이블을 물려서 크롬캐스트를 깔끔하게 연결해 쓰는 편법(?)이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크롬캐스트 4세대는 기본 구성품으로 리모컨까지 준다. 리모컨은 기본적으로 블루투스 기반으로 동작하지만, IR 센서도 내장되어 있어 TV의 전원이나 음량도 제어할 수 있다.
리모컨에는 AAA 사이즈 건전지 2개가 들어간다. 박스의 매우 구석진 곳에 번들 건전지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애꿎은 번들 건전지 놔두고 새 건전지를 사는 우를 범하기 전에 일단 박스를 잘 뒤져보자.
본체의 외관은 3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쪽으로 쭉 뻗어나온 HDMI 수단자와 함께, 본체 표면에는 인디케이터 LED, 리셋 버튼, 전원 포트가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이전 세대와 비교해 리셋 버튼의 위치가 본체의 측면이 아닌 후면으로 옮겨져 3세대보다 더 누르기 편해졌고, 전원 포트도 MicroUSB(5핀)에서 USB-C로 바뀌었다.
요구 전력량이 늘어난 크롬캐스트 4세대는 더 이상 TV의 USB 포트에서 나오는 전원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렇게 전원 어댑터를 통해 외부 전원을 공급받는 구조로 TV에 연결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그냥 TV의 USB 포트에 전원 케이블을 물리고 기기를 부팅시키면 이러한 경고 화면이 나오며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력을 최대 1.5A까지 끌어올리는 DCP 케이블 같은 물건을 쓰면 TV의 USB 포트로 전원을 공급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론 애초에 구글에서 공식적으로 권장하는 방식이 아니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TV의 전원을 켤 때마다 매번 처음 부팅에 걸리는 30초 정도의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그냥 얌전히 외부 전원 물리고 절전 모드 테크를 타면서 빠릿빠릿하게 쓰는 편이 낫다.
크롬캐스트 4세대를 TV에 처음 연결하고 부팅하면 이전 세대 모델에서도 그랬듯이 Google Home 앱에서 이 기기를 연동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코드가 포함된 설정 시작 화면이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3세대와 차이점이 있다면, 4세대는 따로 Google Home 앱에서 기기를 연동해 폰에서 설정을 진행하지 않고도 본체와 같이 제공된 리모컨을 통해 자체적으로 설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4세대의 셋톱박스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사용기
4세대 이전까지의 크롬캐스트는 외부에서 콘텐츠를 전송해줄 다른 기기가 있어야 제 역할을 하는 수동적인 장비였다면, 4세대는 다른 것 없이 오로지 크롬캐스트 하나만 있는 상태에서도 스스로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장비다. 어떻게 보면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크롬캐스트 4세대는 '구글 TV' 플랫폼이다. 간혹 뭉뚱그려서 안드로이드 TV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구글 TV'와 '안드로이드 TV'는 엄연히 비슷해 보이지만 결을 달리 하는 물건이다. 안드로이드 TV를 기반으로 하여 콘텐츠 소비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도록 구글의 커스텀이 가해진 버전이 구글 TV라고 볼 수 있다.
구글 TV 플랫폼답게 '구글 어시스턴트'도 이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의 구글 어시스턴트는 특정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제목을 검색하면 여러 OTT 서비스에 걸쳐서 해당 작품을 볼 수 있는 경로를 찾아주고, 검색한 작품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추천해 주는 목적으로 주로 쓰인다.
구글 TV 시스템 자체가 애초에 대중성이 충분한 안드로이드 TV 기반이기 때문에 유튜브, 넷플릭스, 애플 TV, 웨이브, 왓챠 같은 대형 콘텐츠 서비스들은 무조건 이 기기를 지원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리모컨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버튼이 아예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
또한 기존에 안드로이드 TV용으로 출시된 앱들도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크롬캐스트를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거나 순정 환경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가령 NAS를 운용하는 사용자는 Kodi를 통해서 NAS에 저장된 콘텐츠를 관리하는 미디어 센터를 크롬캐스트에 구축할 수 있고, 아이폰 사용자는 AirScreen과 같은 서드파티 캐스팅 앱을 통해 크롬캐스트를 에어플레이(AirPlay) 규격에 대응시켜 순정 환경에서는 지원되지 않는 화면 미러링 등의 작업이 가능하다.
크롬캐스트 4세대의 또다른 장점으로는 블루투스를 통해 다른 주변 기기들을 연동하여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포티파이와 같은 음악 앱을 쓸 때 현재 재생 중인 음악을 TV 스피커 대신 외부의 블루투스 스피커로 즐길 수가 있다.
블루투스로 게임 컨트롤러를 연결하면 스팀 링크와 같은 앱을 통해 클라우드 게이밍을 즐길 수도 있다. 다만 크롬캐스트가 이런 용도로 최적화된 기기는 아닌 만큼 요구 사양이 낮은 인디 게임을 구동하는 게 아닌 이상 뛰어난 퍼포먼스를 기대하면 안 된다. '가능하다'는 것에만 의의를 두어야 할 듯.
크롬캐스트 4세대 4K 모델은 4K HDR 화면과 돌비 애트모스 음성 출력을 지원하지만 기본적으로 하위 호환이 되기 때문에 구형 HDTV에 연결해도 TV가 지원하는 최대 품질의 화면을 뽑아준다.
4K 모델을 사 놓고 HDTV에 물려 쓰는 것을 두고 누구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걸어주는 격'이라 평할 수도 있겠지만, HD 모델보다 최대 지원 해상도가 높게 설계된 만큼 이에 따라 하드웨어 성능도 더욱 좋게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똑같이 HD 해상도의 화면을 볼 것이라면 성능이 높아서 조금 더 빠릿하게 동작하는 쪽을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총평
그동안 구형 TV 모니터에 스마트 TV 수준의 높은 활용성을 갈구해왔던 내게는 크롬캐스트 3세대도 나름대로 유용한 물건이었지만 4세대는 나의 이런 바램을 매우 정확히 충족시켜주는 물건이 되시겠다.
무엇보다도 다른 기기가 없어도 TV 단독으로 굴릴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편리한 덕택에, 스마트폰을 켜고 크롬캐스트에 캐스팅 명령을 보내는 일련의 과정이 3세대를 쓸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4세대를 쓰기 시작하니 갑자기 매우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수준까지 이르렀다면 정녕 이 기기를 '크롬캐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까? 사실상 이제는 '크롬캐스트'라는 이름이 붙은 구글 TV 셋톱박스인 것 같다. 미러링 기기인 척하는 셋톱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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