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모바일 주변기기를 주로 판매하는 중국의 이름 모를 도매업체 사이트에서 신기해 보이는 제품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RCA, 동축, 옵티컬, AUX 단자와 블루투스 송수신, FM 송신 모듈이 한데 모여 있는 동시에, 화룡점정으로 블루투스 페어링용 NFC 태그까지 박혀 있는 이른바 ‘블루투스 오디오 어댑터’ 겸 ‘FM 트랜스미터’ 되시겠다.
개인적으로 이 제품에 눈길이 간 부분은 ‘FM 트랜스미터’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사실 블루투스로 오디오 스트림을 받아 FM 신호로 다시 뿌려주는 류의 장비는 이미 시중에서 ‘카팩(Car Pack)’이라는 명칭으로 꽤 팔리고 있긴 하다. 이것을 찾는 주 계층은 FM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 재생밖에 지원하지 않는 구형 카오디오를 내장한 자동차의 차주들이다.
그러나 이 제품은 시중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FM 카팩과 다르게 꽤 범상치 않은 부분을 여러 곳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를 간단히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다.
- 수상하게 오디오 입력을 받는 경로가 너무나도 많다. 이런 제품에 블루투스는 매우 당연하고 AUX 단자까지는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데, 동축에 옵티컬 단자까지 달려 있는 걸 봐서는 보통 제품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 시중에 판매되는 카팩은 오로지 자동차 운전 중에 사용하는 경우만 전제하기 때문에 시거 잭으로 전원을 공급받는 무배터리 제품이 주류다. 그러나 이 제품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내장하고 있는 동시에 전원 입력도 MicroUSB(5핀) 단자로 받는다. 여기서부터 이 제품의 주된 타깃이 ‘차주’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하다.
- 결정적으로 이 제품은 해당 사이트에서 ‘아이폰용 액세서리’라는 카테고리 아래 판매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제품을 만든 사람들도 이것을 차량용품 비슷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모바일 주변기기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품 자체는 아이폰을 쓰는 것을 오히려 기피할 것 같은 힙스터들이 좋아할 듯한 요소가 뭉쳐져 있지만 그건 둘째치고)
여기까지 읽고 ‘왜 굳이 이런 특이한 제품을 만들 생각을 한 걸까?’라는 의문을 품었다면 이 판을 얕잡아 본 것이다. 과연 수요가 있을까 싶은 매니악한 컨셉의 제품까지 여러 부품들을 어떻게 잘 조립해서 실제로 상용화를 시키는 곳이 중국 선전의 부품 제조공장 단지와 가까이 있는 이런 도매업체들이다.
필자와 같은 힙스터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놓은 결과물인 것마냥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 제품. 아무 생각 없이 단순 호기심으로 구매해도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을 만한 제품이기도 했지만, 특히 나의 경우는 이 제품에 실용적인 쓰임새까지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매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FM 트랜스미터’라는 점에 눈길이 갔는가
평소에 라디오를 많이 듣는 필자는 위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생긴 붐박스형 오디오 플레이어를 자주 쓴다. 특히나 이 제품은 실내에서도 AM 라디오의 수신 성능이 좋게 나오는 편이면서, USB나 SD 카드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 음원까지 재생할 수 있는 막강한 호환성을 자랑하여 개인적으로 구매 후 효용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제품이다.
그러나 이 제품을 쓰면서 느낀 유일한 단점도 있는데, 요즘 같이 재생 컨트롤을 플레이어 자체가 아니라 스마트폰 등의 외부 모바일 기기에서 다루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에 이 제품은 외부 기기의 오디오 스트림을 직접 입력받을 수 있는 소스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컨셉의 플레이어에 은근히 있을 법한 AUX 단자마저도 없다.
하지만 AUX 단자가 내장된 비슷한 컨셉의 다른 플레이어를 사기에는 지금 쓰고 있는 것의 라디오 수신 성능이 너무 만족스러웠던 탓에 선뜻 갈아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이렇게 고민만 할 바에 차라리 'FM 트랜스미터 같은 물건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오디오를 FM 라디오 전파로 송출해서 듣자'라는 순 괴짜 같은 해결책까지 구상하고 있던 차에 딱 이 제품을 발견해 버린 것이다.
이 제품, 한국에서 써도 되나?
사실 이 제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직후 유일하게 떠오른 의문은 '과연 전파법이 엄격한 편에 속하는 한국에서 이 제품을 아무런 법적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가?'였다. 일단 이 제품은 확인 결과 국내 전파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고, 심지어 소출력 FM 중계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자칫하면 무선국 관련 법률까지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트리거'가 참 많은 제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깔끔하게 결론만 말하자면 이 제품을 개인 사용 목적으로 1대만 수입하여 사용할 경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이 사용하기 위해 반입하는 방송통신기자재는 적합성평가(전파인증) 의무가 면제된다. (전파법 제58조의3 제1항 제1호 의거)
- 미약 전계강도 무선기기에 해당하는 무선국용 기자재의 경우 별도로 신고하지 아니하고도 무선국을 개설할 수 있다. (전파법 제19조의2 제2항 의거)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위 사안으로 민원을 넣고 답변까지 받았다. 아래는 국민신문고에서 해당 민원을 실제로 넣었던 기록이다.
언박싱
그렇게 전파법 위반 소지가 없다는 것까지 확인한 이후 당당하게 '주문' 버튼을 누르고 12달러를 지불하여 2주 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이 제품이 우리집 대문 앞에 오긴 왔다. 상자를 뜯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라고는 '와… 이게 정말로 실존하는 제품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용해 보니
이 제품을 쇼핑몰 사이트에서 처음 봤을 때는 'FM 중계 기능'이 다른 기능들과 대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알고 보니 이 제품에서는 블루투스 리시버 기능이 유일한 메인 기능에 가깝고 FM 중계 기능은 그냥 심심해서 한 번 넣어본 듯한(…) 쩌리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듯했다.
내장 배터리 용량은 510mAh 정도로 조금 적은 편이라 FM 모드로 2~3시간 정도 사용하기만 해도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경고음을 들을 수 있다. 어차피 항시 전원 케이블에 물려놓고 쓰면 되긴 하지만...
(나 말고 이 제품을 써 볼 사람이 과연 있긴 한가 싶지만) 이 제품이 작동하는 양상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 리시버 모드(RX Mode): 블루투스로 받은 외부 오디오 스트림을 AUX 단자에 꽂힌 오디오 기기로 내보낸다.
- 트랜스미터 모드(TX Mode): AUX, RCA, 옵티컬 단자로 받아들인 오디오 스트림을 외부의 블루투스 오디오 기기에 내보낸다.
- FM 모드(FM Mode): 블루투스로 받은 외부 오디오 스트림을 FM 라디오 전파(!)로 내보낸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진짜로 FM 모드의 존재가 되게 뜬금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굳이 이걸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게 하는 기능이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겠지만 꿋꿋이 이 기능을 넣을 생각을 한 이 제품의 이름 모를 설계자 분께 박수를 드리고 싶다. 결론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SP용 지상파 DMB 수신 모듈 사용기 (그런데 지금은 2023년) (2) | 2023.07.12 |
---|---|
알리에서 '휴대용 디지털 TV' 직구한 후기 (LEADSTAR D5) (0) | 2023.06.19 |
크롬캐스트 4세대(4K) 후기: 미러링 기기인 척하는 셋톱박스 (0) | 2023.03.05 |
아이패드 미니 6세대 후기: 작지만 강력하다 (0) | 2023.02.25 |
前 6s 유저의 아이폰 SE3 후기: 👥"폰 바꾼 거 맞아요?" (4) | 2023.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