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게임의 발달로 인해 오락실에서 즐기는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리듬 게임'은 유독 현재까지 이 시장에서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장르다. 최근까지 오락실 격투 게임 '최후의 보루'로 명맥을 이어왔던 〈철권〉 시리즈마저 〈철권 7 FR〉을 끝으로 아케이드판 신작 출시를 포기하면서, 오락실 게임을 대표하는 3대 전통 장르인 격투·슈팅·리듬 중에서 이제는 오직 리듬 게임만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오락실에서 아케이드 리듬 게임은 은근히 두터운 매니아 층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 노량진에 있는 '어뮤즈타운'과 같이 리듬 게임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며 성업 중인 업소까지 있을 정도다.
이러한 양상은 아케이드 게임의 종주국인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여기는 단순히 매니아 층이 두텁기만 한 것을 넘어 해마다 새로운 콘셉트를 지닌 신작 게임들이 출시를 거듭하거나 리듬 게임을 주제로 한 전문 프로 리그도 인기를 얻고 있는 등 시장 참여 또한 활발한 상황이다.
한편으로 본인도 오락실에서 〈비트매니아 IIDX〉와 같은 일본의 아케이드 리듬 게임을 자주 즐겨하는 유저로서, 한국보다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일본의 아케이드 리듬 게임 시장에 대해 평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중이 이번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도 반영되어, 결국 "아케이드 리듬 게임 시장에 대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일본만의 활발한 분위기를 경험"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쪽으로 이번 여행의 목표를 잡았다.
일본 오락실 속 리듬 게임의 입지
개인 점포 위주로 활성화되어 있는 한국의 오락실 업계와 달리 일본은 직영 브랜드를 걸고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점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짱오락실'과 같이 이런 식의 운영 구조를 가진 점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여기에서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는 '라운드원'과 '타이토 스테이션' 등이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묵게 된 숙소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텐진역 주변 거리에서도 이 두 브랜드의 지점을 비롯해 세가에서 운영하는 '기고' 지점까지 총 3곳의 점포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 오락실에서도 전통적인 게임방 구조에 '뽑기방'이나 '코인 노래방'의 요소를 접목하여 더 많은 방문자를 끌어모으는 마케팅 방식은 낯설지 않지만, 일본의 프랜차이즈 오락실들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테마 파크'라는 세일즈 포인트가 말해주듯이 유독 이런 부분에서 한국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에 임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했던 오락실 세 곳 모두 오히려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보다도 다른 어트랙션 요소들의 세일즈 비중이 더욱 높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흔히 오락실 하면 '음침한 분위기에서 비디오 게임에 열중'하는 다소 건전함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편견을 적극적으로 타파하기 위한 설계로 짐작된다. 라운드원에서 봤던 뽑기 게임 코너와 비디오 게임 코너의 분위기가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 이러한 설계의 의의를 증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가족형 테마파크'라는 스탠스 속에서 마니아들만 우글거리는 리듬 게임은 자연스럽게 그 취급이 매우 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리듬게이머로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 점포 모두 서로 뜻을 맞춘 것인지 리듬 게임 구역은 고립된 라푼젤마냥 점포의 맨 최상층에 위치해 있는 것은 기본이요, 심지어 라운드원과 타이토 스테이션은 메인 에스컬레이터를 리듬 게임 구역의 바로 아랫층에서 끝나게 해 놓아 구석의 비상 계단을 통해 따로 한 층 더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극악의 접근성을 구현했다.
일본 아케이드 리듬 게임의 최근 트렌드
요즘 일본에서 새로 출시되는 아케이드 리듬 게임들을 보면 대개 원형 프레임에 기반한 조작계를 채택하거나 댄스를 구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는 UX가 트렌드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를 대변하고 있는 네 가지의 최신 게임들을 소개한다.
테토테×커넥트 (テトテ×コネクト, 2021)
2021년 12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타이토의 신작 리듬 게임이다. 본래는 2019년 6월에 최초 공개되어 같은해 겨울에 정식 출시가 예정된 게임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출시가 거듭 연기된 끝에 최초 공개 후 2년이나 지난 2021년에 이르러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조작계는 대형 터치 스크린의 곳곳에 나오는 노트를 양손을 써서 처리하는 식인데, 화면 속의 파트너 캐릭터가 구사하는 안무를 '거울 보고 따라하듯이' 노트를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터치 스크린에 기반한 노트 처리만 따져본다면 닌텐도 DS용 게임인 '응원단 시리즈'와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에서 화면 속에 나오는 가상 캐릭터와 듀엣으로 춤을 추는 듯한 충격적인(?) 비주얼을 선사하기 때문인지 은근히 리듬게이머 사이에서 '오타쿠 고로시(공개망신)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타이토도 이 점을 아주 모르고 있지는 않나본지 최근에는 홀로라이브와의 콜라보를 통해 파트너 캐릭터로 버추얼 유튜버까지 데리고 오는 등 이런 '고로시 특화'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댄스 어라운드 (DANCE aROUND, 2022)
2021년 11월에 최초 공개되어 이듬해 3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코나미의 신작 리듬 게임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라운드원에만 독점적으로 공급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라운드원 지점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것 정도. 일본 오락실 업계가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보니 이런 '특정 체인 독점' 타이틀을 붙고 나오는 게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상 캐릭터와 마주보고 춤을 추는' 콘셉트에서 되게 "테토테 커넥트 게섯거라" 하며 나온 듯한 인상이 들게 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조작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테토테 커넥트'는 춤을 추면서 터치 스크린을 같이 조작해야 한다면 '댄스 어라운드'는 AI 기반 모션 카메라가 플레이어의 동작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입력을 넣기 때문에 말 그대로 판 위에 서서 진짜 춤만 추면 된다.
사실 코나미 리듬 게임을 통틀어 '서서 춤만 추면 되는' 콘셉트는 이미 〈댄스러시 스타덤(2018)〉에서 먼저 시도된 바 있다. 그러나 댄스러시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나오는 노트를 기반으로 프리 스타일 댄스를 의도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춤에 조예가 깊지 못한 사람은 그저 노트를 처리하기 위한 발재간 정도밖에 구사하지 못해 충분히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에 비해 '댄스 어라운드'는 실제 춤 동작에 기반한 형태의 노트와 함께 ('테토테 커넥트'에서 봤던 것처럼) 화면 속 파트너 캐릭터가 구사하는 안무를 거울 보듯이 따라할 수 있는 UX를 제공함으로써 댄스러시의 높은 자유도로 인해 생긴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이외로는 선택 가능한 파트너 캐릭터로 유명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까지 있을 정도로 대중성 확보에도 꽤 공을 들인 듯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오타쿠 사이에서 도는 농담 중에 "하츠네 미쿠와 콜라보한 게임은 얼마 못 가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이 게임은 그 징크스를 극복해(?)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뮤직 다이버 (MUSIC DIVER, 2022)
2022년 5월에 최초 공개되어 같은해 12월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타이토의 최신작 리듬 게임이다. (여행을 왔던 때가 이 게임이 가동을 시작한 지 불과 1달여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게임 타이틀 화면에 타이토 로고와 함께 라운드원 로고도 같이 나오고, 공식 사이트의 가동 점포 목록에서도 라운드원 지점밖에 없던 것을 보아하니 이것도 라운드원 독점 게임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정작 타이토가 낳았지만 타이토 스테이션에는 들이지 못하는 비운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게임의 조작계는 양손에 각각 채를 들고 터치 스크린 또는 테두리 프레임을 두드려 화면 중앙에서 4방위로 뻗어 나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식인데, 나오는 노트의 생김새에 따라 채로 두드려야 하는 부위가 구별된다. 노트가 4방위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조작계의 특성은 마치 '태고의 달인' 시리즈와 흡사하다.
충격에 민감한 디스플레이를 직접 타격해야 하는 조작계의 특성상 채의 맨 끝이 테니스공 감싸 놓은 듯이 뭉툭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의외로 직접 플레이해 보니 타격감은 꽤 나쁘지 않았다.
크로노 서클 (CHRONO CIRCLE, 2021)
2021년 6월에 최초 공개된 이후 같은해 12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안다미로의 신작 리듬 게임이다. 한국에서 '펌프 잇 업'의 개발사로 잘 알려져 있는 그 안다미로가 맞다.
이 게임도 라운드원에만 독점으로 납품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오로지 일본과 미국의 라운드원 지점에서만 볼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런 탓에 라운드원이 진출하지 않은 한국 오락실 업계에서는 이 게임을 접하지 못할 줄 알았으나 지난해 10월에 기습적인 로케이션 테스트가 이루어졌던 것을 계기로 한국 진출의 가능성이 약간은 열려 있는 상태다.
이 게임의 조작계는 화면의 중앙에서 뻗어나오거나 평면상에 표시되는 노트를 원형 프레임의 테두리를 따라 정렬된 11개의 버튼과 터치 스크린 조작을 통해 처리하는 식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단순히 세가의 '마이마이 디럭스'에서 버튼 수를 몇 개 더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시간의 신 '크로노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게임은 그 명색에 걸맞게 빙빙 돌아가는 시곗바늘처럼 프레임을 돌리기까지 해야 한다. 참신하기는 하지만 고난이도 채보를 연주할 때 기체의 내구성이 약간은 걱정되는 부분이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2019년경부터 '사양 강화판'과 같은 포지션으로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비트매니아 IIDX의 '라이트닝 기체'는 단가가 높은 신형 기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일본 프랜차이즈 오락실에 한해서는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델이 되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라이트닝 기체가 청일점을 이루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옛날부터 쓰이던 디럭스 기체가 홍일점을 연출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라이트닝 기체로 플레이하는 데 드는 표준 요금이 보통 2,000원인데, 이곳에서는 그것의 절반 수준인 100엔으로 플레이가 가능한 점도 한국 유저로서 살짝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라이트닝 기체의 보급과 정착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졌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폐장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실컷 게임을 하고 남은 돈으로 '카드 커넥트'에서 가챠를 돌려 비트매니아 IIDX의 캐릭터 카드를 뽑았다. 총 2,000엔을 한꺼번에 모두 투자했는데 레어 카드만 5장을 뽑아서 나름 괜찮은 수확을 거뒀다.
100엔을 내고 가챠를 한 번씩 돌릴 수 있는데, 결과를 본 즉시 100엔을 더 내고 가챠를 추가로 돌릴 때마다 레어 카드의 출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정말 메달 게임으로 돈 버는 코나미 아니랄까봐 이런 쪽에서는 장사 참 잘하는구나 싶다.
세가의 3대 리듬게임인 온게키·츄니즘·마이마이 중에서 유독 한국에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게임인 '온게키'를 한번 해 봤다. 조작 방식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츄니즘 다음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을 만한 게임이었다. 그런데 최고 판정을 가리키는 명칭이 하필 또 'BREAK'인 게 참 디제이맥스 플레이어 입장에서 뭔가 기분이 살짝 나쁘다. (디제이맥스에서는 노트를 처리하지 못했을 시 최저 판정인 'BREAK'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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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zul (@Zzul0714) February 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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